맞는 말입니다. SF도 Science 라는 테마가 있을 뿐 상상의 세계이고, 상상을 제한하기만 해서는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 근에 제가 올린 "반중력을 배제한 세계"를 예시로 들면, 반중력이라는 SF적 상상물을 스스로 치워 버렸다고 해서 작품이 "현실성에 매진하기만 하는, 상상력을 제한해버리는" 것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반중력이 도입될 때는 'SF적 상상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차단되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반중력이 그렇게 널리 사용되고, 사용하는데 에너지도 많이 들지 않아서 펑펑 쓸 수 있다면, 상상력의 제한이 풀린 게 아니라 반중력으로 인해서 대기권에 진입하고, 행성에서 탈출하는 등 기존의 장애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 작가가 상상해야 할 부분을 없애 버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반중력이라는 것이 작가의 상상에 방해만 되는 것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반중력으로 인해 행성의 진입과 탈출이 수월해짐으로서 더 넓은 세계관을 더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다른 분야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중요한건 기술 묘사보다, 개연성과 스토리이니, 기술 상상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간단히 메우고 넘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 신의 작품에 대해 '이건 이래서 불가능하고, 저건 저래서 불가능하다'라고 하나하나 지적하는 행위를 반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취향을 떠나서 다른 작품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작품의 핵심이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라면요.) 어느 창작물을 보아도 그렇지만, SF 두 글자에서 과학 자체를 보여주는 S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F가 더 가치 있는 것이기에 (S만을 찾고 싶으면 물리학이나 공학을 공부하는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F보다 S만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SF를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S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제 생각에 중요한 것은, 다른 성향을 가진 작품을 존중해주는 태도이지,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게 잘못되었느냐 틀렸느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을 따라 "제대로 즐길"줄 모른다고 해서, 자신이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세상은 다양해서, S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이 SF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SF에서 S를 찾는 것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 말입니다.[주1]


결국 SF에서 어느 것을 추구하느냐는 각자 다른 노선을 걷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맞습니다. 미래 예측은 쉬운 일이 아니고, 우리가 합리적으로 '이건 안 된다'라고 생각하던 것이 실제로는 되는 경우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럴듯한 것'을 "무리하게" 찾아서는[주2] 안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SF에서 현실성 추구'라는 서브컬쳐 속의 서브컬쳐도 그 나름의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은데 현실성 때문에 다음 이야기를 못 잇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르쉬드님의 조언은 값진 조언이 될 것입니다만, 제 발로 '과학'의 속박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라고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주1]: 그렇다고 제가 전반적인 SF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엄격한 부분은 제가 쓰는 설정(저는 소설을 안 씁니다)이지, 다른 사람의 작품은 그 자체로 즐깁니다.

[주2]: 어느 소설이든 개연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현실성은 추구합니다. 제가 말한 현실성 추구는 좀 더 극단에 가까운 사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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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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